어제 남한산성 옛길 스탬프 투어를 했어요!
11개 다는 못했지만 반 정도 찍었네요.
사진 순서는 제가 이동한 순서입니다.
1번 좌익문(동문)->2번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점심식사->9번 전승문(북문)->4번 우익문(서문)->3번 수어장대 순으로 찍었어요!
남한산성 종점에서 내려서 세계유산센터부터 가서 스탬프용지를 얻었습니다!
가는 길에 119 보이는데 건물이 인상적이네요 ㅎㅎㅎ
스탬프용지는 팜플렛들과 같이 있어요.
옛길 안내지도가 스탬프 용지입니다!
팜플렛 보관대 밑에 도장이 하나 있는데 그건 세계문화유산 스탬프투어와 관련된 도장인 것으로 보이고요.
저는 처음에 그거랑 혼동해서 그걸로 찍었다가 아닌 거 확인하고 되돌아와서 다시 찍었어요.
주차장도 곳곳에 많았는데 주말이라 차가 엄청 많더라고요~
지수당
지수당은 1672년, 부윤 이세화(1630~1701)가 건립한 정자로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장소입니다. 본래 지수당을 중심으로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2개만 남아있습니다.
출처: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팜플렛
멋진 풍경 보이면 사진도 찍으면서 이동했어요~
길 중간중간 읽을거리가 많더라고요~
동문이 제일 가까워서 동문부터 들렀습니다.
스탬프 찍을 거면 동문에 올라갈 필요는 없어요.
어디를 봐도 초록빛이 보여서 눈이 편안한 것 같아요~
졸졸졸 물소리도 들려서 계곡도 구경했어요.
1. 1번 좌익문(동문)
스탬프 찍을 거면 동문에 올라갈 필요는 없어요.
그렇지만 올라와서 본 경치도 멋지더라구요~
동서남북문 모두 산에서 내려다보는 위치라 그래서 성을 여기에 쌓았구나~ 싶었습니다.
사진으로 스탬프 위치와 동문 위치 가늠해보시면 될 것 같아요~
2개 정도 찍어보면 스탬프가 지도 표지판 옆에 있구나, 라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동문 스탬프 찍고 나서 2번 스탬프를 잘못 찍었음을 알게 되었고 저는 다시 세계유산센터로 되돌아갑니다....
어차피 되돌아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어서 그다지 슬프진 않았네요 ㅎㅎㅎ
2. 2번 경기도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스탬프함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더라구요~ㅎㅎ
버스정류장 근처에 식당이 몰려있어서 저는 은행나무집에 들어가서 비빔밥 먹었어요~
자세한 식당 후기는 아래 포스팅 참고!
그다음엔 가까워보이는 북문으로 향했어요.
북문 쪽에는 카페가 많더라고요~
가다 보니 차는 더 이상 출입이 안 되더라구요.
요즘 왜 이렇게 허공에 떠있는 애벌레가 보이는지..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북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3. 9번 전승문(북문)
북문(전승문)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곳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전투'라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이름을 붙여 전승문이라 한 것은 그 때의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때의 기록을 보면 산성 내에 동문과 남문, 수구문의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문은 인조2년(1624)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출처: 안내팻말
스탬프는 북문 맞은편에 있어요.
저는 북문으로 나가서 10번, 11번 스탬프를 찍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요....
이것이 사람들이 쌓았다는 돌탑인가? 했네요~
흙길인데 풀이 너무 무성해서...
전문 등산가가 아니면 뚫고 다니기가 어렵겠더라고요...
게다가 벌레는 왜 빨간색인지....ㅠㅠ
다시 되돌아와서 서문 쪽으로 향했습니다.
나무를 지키는 금림조합
"남한산성의 귀중한 숲을 지켜 후손에게"
남한산성의 산림은 매우 잘 보존되어온 아름다운 생태유산입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산성 내의 숲을 보호하고자 하는 산성 주민들의 의지가 반영되어있는데요, 일반적으로 근대화 이전의 생활연료는 나무였기에 20세기 초반 대부분의 산들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산성 안의 나무들은 예외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금림조합'을 만들어 순산원을 두고 도벌을 막아 보호한 덕택에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금림조합은 남한산성의 숲을 보호하기 위해 산감(산림감시원) 50명을 선출하여 매일 6명씩 교대로 산림을 감시하도록 하였습니다. 산감은 극빈자 계층에서 선발하였기 때문에 숲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취약계층의 구제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한산 금림조합의 노력은 이후 2016년까지 90년에 가깝게 지속되어왔으며, 덕분에 남한산성은 귀중한 생태문화자원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출처: 안내팻말
곧 성곽이 보여서 성곽길을 따라서 걸었어요~
마침 날씨도 좋아 경치 구경도 하고 산성이다 보니 바람도 솔솔 불어서 덥지 않더라구요~
도시
"한양 다음으로 큰 완전한 소비 도시, 산성리"
조선시대 한양은 2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시기 영국 런던의 인구가 5만 명이었다는 사실에 비교해 보면 가히 한양의 인구규모를 짐작할 만합니다. 남한산성 옛길이 위치한 산성리 지역은 한양에 인접한 소비 도시였는데 토박이 주민의 제보에 따르면 산성 내 주민들이 주변 마을 사람들을 촌놈 취급했다는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1627(인조 5년) 광주부의 읍치(행정중심지)를 산성 내부로 옮기면서 산성리의 인구는 폭증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895년 갑오경장 이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주유수부가 폐지되고,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까지 일어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그 규모가 서서히 줄어들게 됩니다. 일제에 의해 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던 광주군청이 경안동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군사도시, 행정도시의 위용은 완전히 사라지고, 근대화 시기로 접어들며 주요 도로가 남한산성을 제외한 채 건설됩니다. 이후 한강 이남에서 가장 번성했던 지역 중 하나였던 남한산성은 한적한 마을로 점차 변화하여 잠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출처: 안내팻말
곧 엄청난 계단길을 만나게 되었는데...
쉬엄쉬엄 올라가려고 했는데 왕벌을 발견해서 ㅋㅋㅋ
후다닥 올라가느라 다음날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에서 불나는 중....ㅠㅠ
그래도 올라와서 내려다보면 멋져서 이래서 등산을 하나보다 싶더라구요.
암문 앞에 도착하니 남자분들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스쿼트하고 가심....
숯과 매탄터
"농성의 필수 원료, 숯의 보관소"
매탄터 또는 매탄처는 숯을 묻어 놓은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남한산성에는 숯을 묻어 놓은 장소가 곳곳에 있었고 그 양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에 왜 숯을 묻어 놓은 것일까요? 남한산성은 험준한 산세에 의지해 축조된 농성용 방어산성이었는데요. 농성이라는 것은 적군이 물러날 때까지 성 안에서 버티는 전술을 말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선 왕과 군대, 그리고 산성 주위의 백성들은 모두 성 안쪽으로 이주합니다. 이때 성 바깥의 논과 밭은 적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 불태웁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와 싸울 때 사람을 모두 소개하고 외부의 물자를 깡그리 불태우는 청야전술을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에는 이런 농성전에 사용할 연료를 항상 성 내부에 비축해 두었는데 보관이 용이하고 연기가 나지 않는 숯은 최적의 연료였습니다. 그래서 남한산성의 주둔군 막사 주위에는 숯을 대량으로 비축해 두었던 매탄처가 남아있는 것이랍니다.
출처: 안내팻말
갈림길에서 계속 성곽 따라서~
조금 더 이동하니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있더라구요~
여기가 경치가 제일 좋은가 봐요~
여기서도 롯데타워는 보임~
밤에 보면 야경 멋지겠어요~
오늘 날씨는 맑음!
바로 옆에 서문이 있네요!
4. 4번 우익문(서문)
스탬프는 서문을 마주보고 오른편에 있습니다!
서문(우익문)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서문은 4개의 대문 중 규모가 가장 작고, 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 3년(1779)에 다른 문과 같이 개축하며 우익문이라 칭하였다.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은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피니, 서문이 행궁 우측에 있어 우익문이라 하였다. 서문은 인조 15년(1637) 1월 30일 왕이 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나간 바로 그 문이다. 남한산성의 서쪽 사면은 경사가 급해 물자수송이 어렵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출처: 안내팻말
서문으로 나가면 송파 거여동으로 갈 수 있는데 다시 버스타고 집에 가려고 수어장대 쪽으로 향했어요.
서문에서 남문 방향은 공사 중이라 이렇게 막혀있어요.
바람이 안 통해서 여기 지나갈 때는 덥더라고요~
5. 3번 수어장대
길 따라서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요.
왼쪽이 수어장대로 가는 길이고요.
가운데쯤에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들어오니 멋진 소나무가 있어요~
왼쪽에는 청량당이 있어요.
잠겨있어 들어가보진 못했습니다.
청량당
청량당은 남한산성의 축성과 관련한 민간 신앙처로서 마을의 신을 모시는 신당의 성격을 갖고 있다.
10명의 무속 신 가운데 이회 장군도 있는데, 이회는 조선 인조 2년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동남쪽 부분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이회는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아 날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는 억울한 모함을 받아 처형당한다. 그의 처첩도 삼남(경상, 전라, 충청) 지방에서 축성자금을 모아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소식을 듣고 강물에 투신하였다. 그 후 이회의 무고함이 밝혀져 사당을 짓고 넋을 달래게 하였는데, 이회를 도당신으로 모시게 된 것이 산성 돌기였다. 이는 축성의 의미를 되새기고, 조상들의 고역과 죽음 등 조상들의 삶과 우리 역사를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청량당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중 하나인 민속경관(민간신앙)에 해당한다.
출처: 안내팻말
수어장대는 일종의 감시용 시설로 청량산 정상 부근에 위치해있어요.
2층은 막혀있었지만 1층은 개방되어있어 안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남한산성 수어장대(보물)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에 있어 본래 '서장대'라고 불렀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단층 누각이었고, 수어청 우영장(이천부사)이 서장대에 머물며 군사를 지휘하였다. 이후 영조 27년(1751)에 유수 이기진이 복층으로 중건하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헌종 2년(1836)에 유수 박기수가 수어장대를 중수하였는데, 그 형인 박주수가 쓴 것이다.
수어장대에서는 수어사가 수어청의 군사를 지휘하였는데, 정2품 상사에 해당하였다. 수어청은 한양을 수비하는 5군영의 하나로, 본래 한성부 북부 진장방(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일부)에 그 본청이 있고 광주부윤을 부사로 삼아 남한산성을 관할케 하였다. 그러다 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자 정조 19년(1795)에 본청을 완전히 남한산성으로 옮기고, 광주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하였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관리되어오다 2021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되었다. 또한, 수어장대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중 하나인 군사 경관(장대)에 해당한다.
수어장대는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데, 그중 조선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는 '서장대기'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비록 한강의 흐름이 기울여도 그날의 비린내는 씻지 못할 것이다. 만약에 혹시라도 풍경이나 구경하고 유람이나 탐하면서 다시는 감개하고 탄식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이는 이른바 그 양심을 잃은 자이다'
출처:안내팻말
수어장대 오른쪽에 무망루 편액도 볼 수 있었고요.
신생아 작명이 필요하신 분은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에 만해기념관이 보여서 근처에 잠깐 가봤어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일반 주택 같더라고요.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될 것 같아요~
막걸리와 전으로 마무리할까 하다가 밥 먹기 애매한 시간이기도 해서
식혜와 옥수수술빵으로 마무리했어요!
식혜만 다 마시고 술빵은 집으로~
하루 날 잡으면 나머지 스탬프도 찍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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