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스탬프 투어

[걷기여행] 경기옛길 스탬프투어 영남길 4길 석성산길 두번째!(용인시박물관 - 석성산 정상 - 용인시청)

728x90
반응형

어제 석성산 다녀왔어요...

용인시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산길로 올라가면 석성산이 바로 나오는 건 아니고 해놀공원이 먼저 나와요.

이 근처에서 뭐가 많이 발견됐나 봐요.

산길 아래쪽은 야자매트가 깔려있어 걷기 좋았어요.

서울 부암동 백사실계곡에도 도롱뇽이 있다는데 아직 도롱뇽을 본 적이 없네요.

왜 넘어져있는 걸까...

석성산도 의자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힘들면 의자 보일 때마다 쉬어주면 될 것 같아요.

다른 블로그에서 경기옛길 어플은 2코스로 안내한다고 나온다고 하길래 저도 2코스 쭉 따라갔어요.

위험하다는 현수막은 처음 보는데......

성남누비길 걸을 때도 저런 현수막은 본 적이 없어요....

알려줬는데도 겁대가리 없이 보호장구도 없는데 팝콘 들고 올라감........ㅠㅠ

위험구간에 경기옛길 리본 하나 달려있는데 진짜 눈으로 욕함ㅋㅋㅋㅋㅋㅋㅋㅋ

위험구간 지나니 계단이 또 엄청 나오는데 이 계단보다 위험구간이 더 무서웠어요ㅠㅠ

솔직하게 청계산에서는 그냥 올라갈수록 내가 올라갈 수 있는 면적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무섭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냥 생명의 위협을 느꼈음...............ㅡㅅㅡ

이제 2코스 이용 안 하기로.........ㅠㅠ

석성산 검색하면 왜 용인시청에서 올라가는 포스팅만 나오는지 이제 알 것 같다능.....

정상 도착

그래도 시청에서 올라오는 것보다는 훨씬 빨리 올라와요.

석성산 일출.... 언젠간 볼 수 있겠지?

전망은 진짜 좋아요.

나뭇가지 하나도 없고 탁 트여있어요.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혼자 한증막 온 줄.....

힘드르다........

해를 등지고 찍으니 글자가 잘 안 보여서 계속 찍음.......

할미산성은 반대방향이라....

나중에 기회되면 가보도록 할게요.......

길 곳곳에 시도 보이고요.

하산하는 길에 봉수대 봤어요.

천림산 봉수대처럼 가까이 가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제2로 직봉 -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사적)

봉수는 국경지대에서 발생한 외적의 침입사실을 중앙 정부에 알리는 데 활용한 통신 제도이다. 서울로 향하는 주요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불과 연기로 신호를 보내 국경의 위급 상황을 알렸다.
용인 석성산 봉수는 해발 471m의 석성산 정상에 세운 것으로 조선시대 제2로 직봉의 하나이다. 조선 후기 봉수망을 알 수 있는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는 5개의 직봉* 노선을 운영했는데, 용인 석성산 봉수는 제2로 직봉 노선에 해당한다. 제2로 직봉 노선은 부산 다대포진 응봉 봉수에서 시작하는 노선으로 총 44대의 봉수대가 속해 있다. 이 노선은 삼남 지방의 봉수 신호가 처음 들어오는 안성 망이산 봉수를 지나, 용인 건지산 봉수(원삼면 소재), 용인 석성산 봉수, 성남 천림산 봉수, 한양 목멱산 봉수(경봉수)로 이어진다. 18세기 이후에 석성산 봉수는 화성 흥천산 봉수에서 수원 화성 성벽에 설치된 봉돈으로 이어지는 신설된 노선에도 포함되어 서해안에서 들어오는 신호까지 받았다.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진행한 발굴 조사에서 봉수대 보호 시설인 방호벽, 불을 피우는 굴뚝 시설인 연조, 불을 피우는 데 필요한 비품과 재료를 보관하는 창고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기와, 도자기 편이 다량 출토되었다. 특히 유적의 중심부인 3호 연조 옆에서 돌을 네모 형태로 둘러쌓아 만든 시설에서 조선 후기에 관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백자향로와 제기가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석성산 봉수에서 중요한 의례를 행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제2거 봉수 노선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9년부터 2020년 5월까지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봉수터 아래쪽에 있는 샘터와 건물지를 추가 조사한 결과, 봉수대를 운영하는 봉수군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용인 석성산 봉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2023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제2로 봉수 노선 44개소 가운데 국가사적에 포함된 봉수대는 모두 14곳이다.

*직봉: 변방과 서울을 연결하는 간선로의 주요 봉수대.

출처: 안내팻말
거화시설과 비품

봉수제에서 기본적으로 최소 한 개의 연조는 항상 가동되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연조 한 개에 거화*를 하였다. 따라서 봉수대에 거화를 위한 각종 시설과 비품은 필수적으로 구비되어야 했다. 더구나 거화 재료는 일회용 소모품이었기 때문에 평상시에 항상 구비해 두지 않으면 안되었다.
봉수의 거화에 필요한 시설과 비품은 조선후기 지지**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거화 시설로는 연대ㆍ연굴ㆍ화덕 등이 있고, 거화 비품으로는 부싯돌ㆍ부시*** 등이 있다. 봉수대마다 화약심지도 1, 2개 혹은 5개씩 갖추고 있었다.
거화 재료로는 싸리나무ㆍ소나무ㆍ삼나무 등이나 쑥ㆍ풀 또는 말ㆍ소ㆍ닭 등 동물의 배설물이 사용되었다. 이 가운데 닭똥은 한반도 북부 지역의 일부 봉수대에서 사용되었다. 대체로 말ㆍ소ㆍ닭의 배설물과 회ㆍ조강ㆍ가는 모래 등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봉수군은 비번을 이용하여 틈틈이 민가에서 그것들을 가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지지의 기록에 따르면 각 봉수대에는 거화 재료를 대부분 5개씩 갖추어 둔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조선의 봉수제가 5거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1거만 운용한다고 하여도 사변과 비상시에 대비하여 상시로 5거 분량을 비축해 놓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각 봉수대에는 일회용 소모성 거화 재료를 10여 종 이상 두었다. 따라서 봉수군은 경계 활동을 하는 것 외에도 거화 재료 비치를 위해서 바쁜 일과를 보내야 했다.

* 거화: 횃불을 올려 변방의 상황을 중앙에 알리던 일. 평상시에는 한 번, 적이 나타나면 두 번,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번,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네 번, 적이 아군과 접전하면 다섯 번 횃불을 올렸다.
** 지지: 특정 지역의 자연 및 인문 현상을 백과사전식으로 나누어 기술한 책.
*** 부시(화철): 부싯돌을 쳐서 불이 일어나게 하는 쇳조각.

출처: 안내팻말

하산할 때는 눈이 많이 쌓여있었는데요.

이쪽은 해가 들지 않아서 기온이 올라가면서 자연적으로 녹기를 기다려야 할 듯 하네요.

조금 내려가면 절이 보이는데요.

통화사인데 여기가 해돋이 행사할 때 집합장소인가 봐요.

성벽길을 걷게 되네요.

올라올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물가에 고드름이 잔뜩 생겼네요.

중간에 성벽이 뚫려있고 길이 있어서 봤는데 파란 리본이 달려있는 거예요ㅠㅠ

영남길 리본인가 하고 내려갔는데 다른 글씨 써있어서 다시 올라왔어요ㅠㅠ

화장실이 있네요.

차도가 있는데 길이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모르겠네요.

역시 아까 그 길이 아니었어ㅠㅠ

용인시청 방향 표지판 따라갑니다!

개들이 짖고 있어서 그냥 묶인 줄 알았는데....

계단 조금 내려왔더니 계단까지 올라와서 짖고 있어서 나 물러오는 줄....

핑크색 끈에 산들바람산악회..

여태까지 봤던 산악회 이름 중에 가장 예쁜 듯ㅎㅎㅎ

https://youtu.be/Abs55lenoEU?si=VCZeZ1iZMwC-IaUB

잠깐 딱따구리 보고 가실게요'ㅅ'!

영남길 표식이 그다지 많지는 않아서... 그냥 특징적인 거 중간중간 찍었어요.

멀리 용인미르스타디움이 보이네요.

스토리보드 발견.

제4길 석성산길
멱조현
가난한 농촌 아낙네와 메주에 얽힌 이야기

쇠파리를 쫓다 멱조현을 맨발로 넘은 농부의 아내

지금의 삼가리(삼가동) 근방에 몹시 가난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이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열심히 일했고, 자그마한 밭 몇 평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무엇을 먼저 심을까 의논한 끝에 콩을 심기로 하였습니다. 그 해 콩 농사가 잘되어 아내는 메주를 만들었는데, 쇠파리 한 마리가 메주 위에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내는 기분이 상해 만들던 메주를 내던져 놓고 쇠파리를 잡기 위해 나무주걱을 내리쳤으나, 쇠파리는 잽싸게 다른 메주로 옮겨 앉고, 정성스럽게 만든 메주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더욱 화가 난 아내는 쇠파리를 잡을 생각에 메주가 엉망이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주걱을 휘둘렀습니다. 쇠파리는 메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으나,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뒤따랐고, 맨발인 채 쇠파리만 쫓던 아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넘어 메주고개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용인 삼가동에서 동백을 잇는 메주고개는 현재 멱조현으로 불리고 있으며 멱조란 말은 할아버지를 찾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호랑이에 얽힌 슬픈 전설을 담고 있는 한 명칭이기도 합니다.

출처: 영남길 스토리보드

풍림아파트 방향은 아닌 것 같아 시청 표지판 따라갑니다.

여기서 풍림아파트 방향으로 가다가 용인시청 표지판 보이면 시청 쪽으로 간다고 다른 블로그에서 본 적 있는데 그 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포스팅 읽다보면 알 수 있어요.

저는 계속 시청 방향으로 향했는데요.

이런 현수막이 걸려있는 거 보니 1월 1일에는 정말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드디어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는데 스탬프함이 보이질 않는 거예요ㅠㅠ

가이드북 보면 처인구보건소 맞은편이라고 써있는데 보건소도 안 보이고....

그래서 보건소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조금 내려오니 등산로 입구가 또 있더라고요.

여기로 왔어야 제대로 온 건데....

스탬프함 잘 보이고요.

맞은편에 보건소 보여요.

바로 근처에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서 배차는 길지만 다리가 아프니 그냥 기다렸다가 버스타고 귀가했어요...

이제 진짜 서울가는데 걸리는 시간만큼 걸려서.....더 진행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싶네요ㅎㅎㅎ

다음은 수여선옛길 포스팅으로 돌아올게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