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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여행

[서울여행] <경희궁> 방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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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에 서울대병원 오전진료 보고 서대문 스탬프 찍으러 돈의문박물관마을에 방문했는데요!

경희궁 방문할 생각은 없었는데 돈의문박물관마을 바로 옆에 있더라고요.

얼떨결에 관람하고 왔습니다!

흥화문

경희궁지

이곳은 조선 시대의 5대 궁궐 가운데 하나인 경희궁 터다. 경희궁은 광해군 때 창건되어 고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의 중요한 궁궐이었다.
창건 당시에는 한때 경희궁으로 부른 것으로도 보이지만 줄곧 경덕궁이라 하였고, 영조 이후에 경희궁으로 명명되었다. 또 경복궁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이라 불렀는데 이 말과 짝을 이루어 경희궁을 서궐이라고도 하였다.
원래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과 편전인 자정전 외에도, 수많은 전각들이 지형에 맞게 배치되어 있었다. 1820년대 무렵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하는 <서궐도안(보물 제1534호)>을 보면 그 규모와 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전각들을 대부분 경복궁으로 옮겨서 재사용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로 소유가 넘어가 경성중학교와 관사 등이 세워지면서 궁궐로서의 위상이 훼손되었다. 또한 궁궐 영역도 많이 축소되었으나,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숭정전 일곽과 몇몇 전각들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안내팻말
경희궁 흥화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원래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5개로, 정문인 흥화문 외에도 동쪽에 흥원문, 서쪽에 숭의문, 남쪽에 개양문, 북쪽에는 무덕문이 있었다. 창건 당시 경희궁은 창경궁의 제도를 따라서 규모를 작게 하여 정문도 단층으로 세웠다.
경희궁 근처 얕은 고개를 '야주개'라 하였는데, 이는 흥화문의 현판글씨가 명필이라 밤에도 빛나 그 광채가 고개까지 훤하게 비추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흥화문은 원래 지금의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서 동쪽인 종로를 향하게 지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들어 1915년에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흥화문은 원래 위치에서 약간 뒤로 옮겨지면서 문의 방향도 도로와 나란하게 남향으로 바뀌었다. 1932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찰인 박문사로 옮겨 정문으로 사용하였다. 광복 이후 박문사 터에 차례로 들어선 영빈관과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쓰다가, 1988년에 옛 개양문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궁궐 정문으로서의 역사성을 되살리고자 하였다.

출처: 안내팻말

제가 방문했을 때는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경희궁 외부는 공사 중이라 좀 소란스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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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과 휴관일, 관람료 참고!

보수공사로 인해 자정전, 태령전 쪽 문은 닫혀있었어요.

숭정전만 관람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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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전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내부를 볼 수 있게 개방해놓아서 임금과 신하가 어떻게 대화를 했는지 상상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나가면서 찍은 사진이고요!

 

<경희궁 이야기돌>

1. 경희궁은 누가 세웠나요? 답: 광해군
임진왜란(1592년, 선조 25)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리자 선조 대 후반부터 창덕궁과 창경궁을 차례로 복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술사들의 풍수설에 의존해 새 궁궐 건설을 추진하였습니다. 경희궁은 이러한 과정에서 세워졌습니다.

2. 원래 이름이 경희궁이 아니었다고요? 답: 경덕궁
광해군은 새문동에 왕기가 있다는 풍수설에 따라 1617년(광해군 9)부터 약 3년간 궁궐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궁궐이 들어선 곳의 행정 구역명인 여경방에서 이름을 따 경덕궁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정문임에도 불구하고 단층으로 된 흥화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경덕궁은 다른 궁궐보다 작은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3. 경희궁에서 태어나고 승하한 임금이 누구인가요? 답: 숙종
인조부터 철종까지 재위한 총 10명의 왕은 모두 경희궁에 잠시라도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중 숙종은 경희궁에서 태어나고 승하했으며, 영조와 순조도 이곳에서 승하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위험하거나 불길한 일이 있을 때 또는 정치 상황에 따라 왕이 거처를 옮기기도 하였는데, 특히 숙종과 영조가 경희궁을 정치적으로 많이 활용하였습니다.

4. 경희궁에서 왕의 즉위식을 거행한 곳은 어디인가요? 답: 숭정문
조선의 즉위식은 선왕 장례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졌기에 경종, 정조, 헌종이 경희궁에서 승하한 선왕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즉위했습니다. 즉위식은 장례의 비통함 속에서 치러졌기에 큰 전각에서 성대하게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경희궁에서는 숭정문에서 새 왕의 즉위식을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5. 옛 경희궁의 전체적인 모습을 전해주는 그림이 있나요? 답: 서궐도안
19세기 순조 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궐도안>은 경희궁의 전체 모습을 알려주는 대작입니다. 채색이 없는 밑그림이지만 묘사가 정밀하여 경희궁의 본래 모습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이 외에도 경희궁의 여러 전각에서 벌어진 행사를 그린 그림들과 1829년(순조 29)에 화재로 훼손된 전각을 복구한 기록인 <<서궐영건도감의궤>> 등이 경희궁의 옛 모습을 시각적으로 전합니다.

6. 경희궁은 무엇 때문에 빈터가 되었나요? 답: 경복궁 중건
고종 대에 경복궁이 중건되며 경희궁은 원래 모습을 잃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경복궁을 270여 년만인 1865년(고종 2)부터 3년간 다시 지으면서 주요 전각 및 동을 제외한 경희궁의 전각 대부분을 헐어 경복궁 공사에 부재로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경희궁의 빈터를 필요에 따라 경작지 등으로 이용하였고, 대한제국 시기에는 황궁인 경운궁(현 덕수궁)이 비좁아 이를 보완하는 부속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7. 경희궁 전각을 사용했던 일본인 교육기관은 무엇인가요? 답: 경성중학교
1910년에 일본인 자녀의 교육기관인 경성중학교가 서대문 밖 국립관에서 경희궁으로 이전해 왔습니다. 이를 계기로 경희궁 부지는 왕실과 정치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당시까지 남아있던 숭정전 등 전각은 학교 건물로, 빈터는 운동장으로 쓰였습니다. 1920년대를 지나며 이 건물들마저 모두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면서 경희궁의 옛 건물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8. 일제강점기 경희궁 영역의 동쪽을 잘라내고 들어선 것은 무엇인가요? 답: 조선총독부 관사
1910년대 도시계획인 시구개정사업에 따라 새문안로 측 궁장이 헐리면서 경희궁의 남측 궁역도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그리고 1922년에는 경성중학교 동편에 조선총독부 관사가 들어서면서 궁역은 크게 서측 경성중학교와 동측 관사지대로 나뉘었습니다. 또한 태평양전쟁 중인 1940년대에는 일제가 침전 구역의 지반을 깎아 방공호를 건설했습니다.

9. 광복 이후 경희궁 터에 있던 학교는 어디인가요? 답: 서울고등학교
1945년에 해방되면서 일본인 학교였던 경성중학교는 폐교되었고, 그 건물에는 서울중고등학교가 개교하여 '명문학교'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69년에 중학교 입학시험이 폐지되면서 서울중학교도 폐교되었으며, 1978년 정부의 '강북 각급 학교의 강남 이전' 계획에 따라 서울고등학교는 1980년에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서울고 동문회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표지석을 흥화문 안쪽에 설치했습니다.

10. 경희궁에 다시 돌아온 유일한 건물은 무엇인가요? 답: 흥화문
경희궁의 전각과 문은 약 190여 개였지만, 현재는 숭정전, 황학정, 흥화문 단 세 동만이 남았습니다. 그중 숭정전은 동국대학교에, 황학정은 사직공원에 있습니다. 흥화문은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 박문사로 옮겼으나, 1988년에 경희궁으로 다시 옮겨왔습니다. 다만 궁역이 훼손되어 원래 위치였던 구세군회관 부근에 이전할 수 없어서 서울고등학교 정문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11. 경희궁을 복원할 때 숭정전의 원위치를 알려준 발굴 유구는 무엇인가요? 답: 숭정전 하월대
서울고등학교 이전 후 경희궁 터는 현대건설에 매각됐지만,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고 서울시에서 다시 사들였습니다. 이후 1985년부터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숭정전 하월대를 발견해 궁궐의 정전인 숭정전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여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1998년까지 이어진 발굴조사와 이를 토대로 한 복원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옛 건축물의 자취가 나오지 않은 공간은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한 공원 공간으로 조성하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팜플렛에 나와있는 서궐도를 보니 경희궁이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던 것 같은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점점 축소되었나 봐요.

 

지금은 자정전과 태령전 쪽이 보수공사 중이라 관람이 어려워서 경희궁 관람하는데 30분도 안 걸릴 것 같네요.

이 점 참고하셔서 여행 계획을 세우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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