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는 종묘와 4대궁이 무료관람이라기에 스탬프도 찍을 겸 겸사겸사 1월 28일에 종묘와 창덕궁에 다녀왔어요.
지난번에 북촌 한옥마을 갈 때 봤던 곳이에요.
후원관람은 무료가 아니었어요.
표사는곳 내부에는 기념품샵과 카페가 있고요.
국가유산 스탬프함이 있어요.
창덕궁 스탬프 겟~
카페가 있어서 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기념품 구경도 했는데 여기는 기념품 종류가 많지 않았어요.
창덕궁은 종이 팜플렛이 없어서 휴대폰 오디오 가이드 들으실 분은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창덕궁에 입장하니 나무가 받침대에 누워있네요'ㅅ'....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돈화문은 보수공사 중이었어요.
돈화문 일원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2층 목조 건물이다. 왕이 행차를 하거나 국가행사를 치를 때 드나든 문이고, 신하들은 서편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남쪽에 종묘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돈화문은 궁궐의 남서쪽 끝에 세워졌다. 궁궐의 중심부가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돈화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금천교를 건너 정전인 인정전 구역과 연결된다. 1609년에 다시 세운 돈화문의 아래층은 출입용, 위층은 감시 전망용으로 사용되었다. 돈화문 앞에는 넓은 월대가 있고, 여기서부터 종로까지 관청 거리가 있었다.
출처: 안내팻말
창덕궁 (세계문화유산)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은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을 창건했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 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되지 않았고, 270여 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 제1의 정궁으로 역할하였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하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궐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궁궐 예제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복궁 역시 이 제도를 따랐다. 그러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창덕궁은 인위적인 제도를 벗어나 주변 자연 지형에 순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 되었다.
왕실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 구성은 경희궁, 덕수궁 등 다른 궁궐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1917년에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 짓는 등 많은 건물들이 변형, 훼손, 철거되었다가, 1991년부터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으며, 동궐의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예로 평가된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안내팻말
인정전 일원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문안도 하고 정사를 아뢰며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는 등 중요한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앞쪽에는 임금이 다니는 길인 어도와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품계석을 둔 조정 마당을 두어 국가의 상징 공간으로 삼고, 뒤편에는 인정전 뒷산인 매봉과 맥이 이어지도록 계단식 정원을 마련하였다. 조정 마당을 둘러싼 내행각에는 호위대 주둔소와 창고 등을 두었으나 현재는 비어 있다. 인정문 앞 외행각의 사다리꼴 마당은 불규칙한 지형과 규칙적인 궁궐 형식을 절묘하게 융합한 공간으로, 세종 때의 건축가 박자청이 설계한 것이다. 외행각과 진선문, 숙장문은 1996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출처: 안내팻말
선정전
선정전은 궁궐의 편전(사무공간)으로서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 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은 비서실, 창고 등으로 이용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다. 선정전은 청기와를 올린 것과 앞쪽 선정문까지 복도각 건물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선정전은 한때 혼전(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쓰였는데, 복도는 그때의 흔적이다.
출처: 안내팻말
희정당은 오른쪽에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이 가운데 위치에서 사진 찍으시는 분들이 많길래 저도 한번 찍어봤습니다.
희정당
희정당은 왕의 거처이며 집무실이다. 원래의 이름은 숭문당이었는데 연산군 대에 희정당으로 바꾸었다. 선정전이 종종 국장에 사용되면서 또 다른 집무실로 활용되었고, 왕의 침실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에 불에 타 없어진 희정당을 복구하면서 경복궁의 강녕전을 이전하여 건축한 것으로, 원래의 모습과 다르다. 앞쪽에는 자동차를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현관이 마련되고, 내부에는 유리창과 전등, 근대적 화장실을 설치하고 유럽풍의 가구를 갖추었다.
출처: 안내팻말
내부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네요.
성정각 일원
현재 후원으로 가는 넓은 길에 큰 건물인 중희당이 있었고, 이 일대가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이었다.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때 주로 기거하면서 정궁으로 쓰던 곳이기도 했다. 동궁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육각누각인 삼삼와, 그 옆의 칠분서 그리고 승화루라는 복도로 연결되어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되었다. 성정각은 세자의 공부방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왕가의 내의원으로 쓰였으며, 단층의 몸채에 중층의 날개채가 직각으로 붙은 독특한 모습이다.
출처: 안내팻말
제일 독특한 건물이었어요.
성정각을 지나면 이렇게 길이 갈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왼쪽은 후원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창경궁으로 가는 길이에요.
후원은 봄, 가을쯤에 경치 구경하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가지 않았고요.
창경궁 쪽으로 가서 도대체 어디랑 연결돼있는 거냐며ㅋㅋㅋ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매표소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야옹이를 봤는데요.
너무 빨리 도망가버렸어요.
다시 내려와서 약간 다른 분위기의 평범한 건물이 보여서 나인들이 묵는 처소인가? 했는데요.
알고 보니 낙선재였다는....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돌아와서 여기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다고 하죠.
낙선재 일원
낙선재 일원은 헌종이 1847년에 서재 겸 사랑채로 지은 낙선재와 이듬해, 낙선재 동쪽에 이웃하여 지은 석복헌, 수강재를 하나의 권역으로 일컫는 말이다. 낙선재는 일반적인 궁궐과 달리 단청을 입히지 않았으며 창호, 담장, 굴뚝, 석물 등에 다양한 문양을 더하여 소박하지만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게 지어졌다. 석복헌은 헌종이 후궁인 경빈을 위해 지은 처소이며 수강재는 어린 왕을 대신하여 나랏일을 돌본 순원왕후가 머물렀던 곳이다. 또한 낙선재 일원에서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살았고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와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1989년까지 머물렀다.
*단청: 벽, 기둥, 천장 등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는 것.
그냥 평범했네요.
크기를 빼면 그냥 옛날집 같은 느낌.
다시 출입구 쪽으로 가다 보면 기념품샵과 카페가 보이는데요.
맨처음에 방문했던 기념품샵과 카페와 다른 건물이에요.
대신 여기는 제조음료 판매를 하지 않아서 캔 음료만 마실 수 있어요.
기념품은 여기가 더 다양했고요.
알고 보니 국가유산 스탬프가 여기도 있었네요.
이렇게 종묘와 창덕궁 관람을 마쳤고요.
저는 체력거지라서 종묘와 창덕궁 두군데만 관람했지만 두군데 합쳐도 2~3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어서 창경궁도 같이 관람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추후에 기회가 되면 경치 좋을 때 후원관람해보러 다시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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